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행정구역 개편/수도권/인천확장론 (문단 편집) === 김포시 === [[김포시]]는 1988년까지 [[부천시]]와 경계를 접하고 있었으나, 1973년 부천군 해체 당시 편입해온 계양면이 1989년 [[인천광역시|인천직할시]]로 편입되면서 [[경기도]]청 본청 직할 도시 중 유일한 [[월경지]]가 되었다.[* [[의정부시]], [[고양시]]를 비롯한 한강 이북 경기도는 [[의정부시]] 소재 북부청사에서 관할한다. 여기에 더해, 수원 본청과 의정부 북부청사는 '''도지사 빼고 다 다르다'''라 말할 정도로 업무 단절이 심하다.][* 만일 김포시를 경기북부권으로 편입시킨다면 월경지는 해소가 되겠지만 도청간의 접근성은 수원이나 의정부나 별반 차이 없을 정도로 양쪽 모두 멀다. 거기다 [[평택파주고속도로]]가 완전개통하면 양쪽 도청간의 거리차이는 6km 대로 줄어들어 더더욱 의미가 없어진다.] 이어서 1994년에는 '''김포군 전체를 인천광역시에 편입'''시키는 계획이 나오기에 이르렀는데, 주민투표 결과 [[검단동(인천)|검단면]]만 찬성이 우세했기 때문에 1995년에 [[서구(인천광역시)|서구]]로 편입되었고, 나머지 지역(김포읍, 고촌면 및 구 통진군)은 그대로 경기도에 남았다가 1998년 시로 승격되었다. 김포가 고향인 [[최기선]] 전 인천광역시장도 시장 시절에 김포 전역의 인천 편입을 추진한 적이 있기도 하다. 김포에서 [[서구(인천광역시)|인천 서구]]로 넘어간 [[검단동(인천)|검단]] 지역은 2010년대에 넘어갈 때까지도 금곡동·마전동, 당하동, 원당동, 불로동의 일부 택지 및 상업지구 개발을 제외하면 과거의 시골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다. 금곡동의 검단사거리가 이들 시가지의 중심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이 4개 시가지는 하나의 통일된 생활권을 유지하지 못한 채 따로 놀고 있었고, 심지어 불로동은 김포시 감정동과 완전히 붙어서 김포 생활권에 종속되다시피 하고 있었다. 이는 [[연수구]]와 [[남동구]]의 개발에 집중하던 [[인천광역시]]가 검단을 비롯한 서구 일대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 결과, 검단은 김포나 다름없이 깡촌 한가운데 [[난개발]]지라는 조건에 처해 있으면서도 광역시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했기 때문에, 2000년대 후반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 김포로 되돌아가자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김포시]]는 시 승격 이후 검단 환원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겉으로는 정치 논리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의 부당성[* 1995년 당시에 검단과 함께 [[옹진군(인천)|옹진군]]과 [[강화군]]도 인천에 편입되었는데, 옹진군의 편입은 옹진군 소속의 [[서해 5도]]가 인천 [[연안부두]]를 통해서 가야 한다는 정당성이 있었으나, [[강화군]]의 경우는 인천과는 동떨어져 있었는데도 지리적·군사적 전략으로 인해 중앙정부가 편입을 유도했다. 검단도 아와 마찬가지로 인천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고려가 반영되었다는 것이 환원운동 당시 김포시의 입장이었다.] 해소와 지역 자존심의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실질적 이유는 공장지대였던 검단을 잃어 재정이 궁핍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부터 검단 곳곳에 소규모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2000년대에 공장들이 있던 자리에 주택단지를 건설하면서 공장 이전 부지로 마련한 곳이 현재의 [[검단일반산업단지]]다.] 2000년대 들어 양촌산업지구가 조성되며 시 재정이 차차 나아지자, 김포시 측은 2008년 검단 환원을 포기했다. 이어서 2011년에는 경기도의회가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574045|강화·검단 환원조례를 폐지]]하면서 도 차원에서 검단 환원 주장을 철회했다. 어쨌든 2008년 이후에는 행정구역 개편에 대한 지역 여론은 수그러든 상태였으나, '''[[경인 아라뱃길]]이 건설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아라뱃길로 인해 검단과 인천 본토 간의 교통에 [[헬게이트]]가 열렸고, 검단이 [[김포시]]와 함께 하나의 [[김포섬|섬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렇게 조금씩 행정구역 재조정에 대한 여론이 형성될 쯤, 먼저 논란에 불을 지핀 곳은 [[김포시]]였다. 김포시청은 아라뱃길로 인한 생활권의 변경을 빌미삼아 서구 검단동과 [[계양구]] 계양동을 김포로 환원하는 것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내보였다. 하지만, 김포시의 기대와는 달리 실제 김포 및 검단 주민들은 "이미 2008년 끝난 이야기를 왜 다시 꺼내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계양동 주민들은 "'''김포의 농촌 이미지가 집값을 깎아먹을 것이다'''", "'''서울 편입 추진으로 맞대응하자'''"며 격한 반대 여론을 보였다.[* 검단이라면 몰라도 계양동(옛 계양면)은 역사적으로도 부평도호부 → 부평군 → 부천군으로 이어왔다가 부천군의 해체로 부득이 김포에 편입되었던 것이라 김포시가 돌려달라고 할 명분이 매우 약하다.] 이런 논란을 주시하던 [[인천광역시]] 당국은 논란을 진화시키기는 커녕 불판을 더 키워버렸다. 바로 10년이 넘도록 아무도 생각지 않았던 '''김포시 전체 인천 편입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인천시청은 "검단이랑 계양동은 넘겨줄 수 있는데, 경기도 김포시한테는 못 주겠고 '''인천광역시 김포구'''라면 줄 용의 있음"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렇게 되자, 이번에는 김포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김포 주민들의 반응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지금도 '깡촌' 취급받아 서러운 마당에 [[인천광역시/비판|인천 디스카운트]]까지 뒤집어 쓰란 말임?'''"이었다. 김포시민들 중 마이너한 여론이긴 했지만 독자적인 지자체로 남는 것이 정히 불가능하고 서울편입도 불가능하면 어차피 아라뱃길 때문에 인천이나 고양이나 강 건너야 하는 것은 피차일반이니 '''차라리 고양시 김포구로 자진 격하 후 편입해서 [[일산신도시]] 네임밸류라도 끌어서 달자'''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물론 일산신도시 가치가 90년대 속칭 '천당 아래 분당, 천하 제일 일산,' 소리 나오던 시절보다는 매우 많이 낮아졌긴 하지만 '''그래도 검단이나 한강신도시보다는 상권이나 인프라, 발전수준, 자족기능, 인지도 면에서 상황이 그나마 나은 편'''이긴 하다.] 아마도 이런 여론은 주로 인천보다는 일산과 교류했던 한강신도시 지역 거주민들이 진원지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여론과는 다르게 김포시의 유력 정치인 중 인천 출신[* 대표적으로 김포군수, 김포시장, 김포시 지역구 국회의원을 두루 거친 [[유정복]] 인천시장]이거나 인천광역시 소재 학교를 졸업한 인물이 많아서[* 과거 김포군의 고등학교들이 전부 종합고였기 때문에 김포 지역 우등생들은 [[부평고등학교]] 같은 인천 소재 명문고에 진학했었고, 그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이다.] 지역 정계에서만큼은 인천 편입에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통합 시 인구 약 340만 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